돌연한 출발

  <변신>

비현실적인 힘에 휘둘리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 이것이 카프카의 『돌연한 출발』 아닐까?

주인공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침에 벌레로 변했음을 알아차리며 시작된다. 그러나 그는 변신에 개탄하지 않는다. '나는 어쩌다 이런 고된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라며 변하지 않는 자신의 삶에 개탄한다(58p). 그레고르의 근심은 오로지 식구들이 사업의 불운을 최대한 빨리 잊어버리게끔 하는 것이었다(92p). 결국 그는 변신에 좌절하지 않고 침대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했다.(64p)

  가족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우선, 어머니는 한결같은 모성애를 보인다. 아들의 무단결근을 꾸짖으려 찾아온 지배인에게 '저 애는 정말이지 머릿속에 일밖에 없답니다.'라며 아들을 두둔한다(68p). 아버지와 누이가 완력으로 제지할 때엔 '불쌍한 내 아들에게 가봐야 한다'며 소리친다(98p). 누이동생이 오빠의 방을 정리하자고 제안할 때면, 아들이 돌아올때 모든 것이 변함없다고 느끼고 그동안의 시간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방을 전과 똑같은 상태로 놔두자고 설득한다(101p). 반면, 아버지는 냉정하다 못해 차가운 모습을 보인다. 아들을 밟아 죽이려 했다. 혼란스러워하던 가족들이 아들의 부재에 적응해가자 '내 옛 시절의 평화로구나'라며 경쟁자를 제거한 듯한 말도 한다(113p).

  누이동생은 처음에는 오빠가 방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음식을 가져다 주고 문을 잠궈주는 등 세심히 신경 써준다(88p). 그러나 점점 지쳐간다. 과연 무엇이 누이동생을 변하게 했을까? 작가는 세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아버지는 하급관리들에게 아침식사를 날라주고, 어머니는 모르는 사람들의 속옷을 위해 헌신하며, 누이동생은 판매대 뒤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115p). 직장에서 그들의 모습은 직업병처럼 일상에 지독하게 찌든다. 방을 세놓아본적이 없던 가족들은 새로운 하숙인들에게 안락의자를 권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몸을 낮추고 만다(122p).

  결국 누이동생은 오빠의 방을 말끔히 치우며, 오빠가 아끼던 모든 것을 앗아간다(104p). 심지어는 면전에 대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는다. '만약 이게 오빠였더라면, 인간이 이런 벌레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자기 발로 떠났을 거에요'(129p). 다른 가족들 역시 굴복한다. 가정부가 주인공의 사망 소식을 전해오자, 아버지는 손을 뻗쳐 자세한 묘사를 멈추었다(137p). 어머니 역시 모든 것을 직접 살펴볼 수 있었지만 가정부를 쳐다보기만 한다(133p). 가난은 아버지의 질투를 단단하게하고, 누이동생의 젊음을 답답게하며, 어머니의 사랑을 담담하게 만들었다.
 

<돌연한 출발>

여행이 워낙 길 터이니 도중에 무얼 얻지 못한다면, 나는 필경 굶어 죽고 말 것이다. 양식을 마련해 가 봐야 양식이 내 몸을 구하지는 못하지(154p)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모르며, 왜 사는지도 모른다.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도 모르고, 그 준비 역시 무한하지 못하기에 언젠가 고갈을 마주할 것이다. 여행 출발 전이 아니라, 여행하는 중간중간에 얻어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선고>

어쨌든 친구들의 도움에 매달려 보라고 권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그를 좀 더 아껴주는 처사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그를 더 모욕하며, 그의 지금까지의 시도들이 실패했으니 이제는 다 집어치우고 돌아와 어디까지나 되돌아온 자로서 모든 사람들의 놀란 눈총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하는 것이리라(172p)
…
우리들 서로의 관계는, 자네가 이제 지극히 평범한 친구 대신에 행복한 친구를 가지게 됐다는 정도로만 다소 달라졌네(176p)

사업, 결혼 모두 성공한 화자는 타지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친구에게 고국으로 돌아오라는 조언을 하려 한다. 성공한 상태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연락할때면 고민되는 것이 하나 있다.친구가 나의 모습을 보고 혹여나 부러움과 비참함이 들지 않을까. 나의 행복이 상대방의 자존감을 깎아버리는 건 아닐까. 그러나 이를 두려워하여 행복 총량을 줄이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일이 없다. 평범한 친구에서 행복한 친구로 변했다는 것만으로도 친구는 기뻐해줄 것이다. 때론 조언으로 인해 상처받지는 않을까 걱정 또한 든다. 하지만 진심어린 조언은 상대방에게도 그 진심이 전해질 것이다.

<학술원에의 보고>

제가 출구란 말을 무슨 뜻으로 쓰는지 똑바로 이해받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됩니다. 저는 이 말을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빈틈없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부러 자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방을 향해 열려 있는 자유라는 저 위대한 감정을 뜻하는 게 아니거든요(197p)
…
제가 이 사람들의 테두리 안에서 얻은 평정이 저를, 무엇보다 온갖 도망치려는 시도로부터 막아 주었습니다. 오늘날로부터 보건대 저는 최소한 살고자 한다면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 출구는 도망쳐서는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하기라도 했던 것 같습니다(199p)
…
만약 제가 앞서 말씀드린 저 자유의 신봉자였더라면, 저는 분명히 사람들의 침울한 눈길에서 제게 보인 출구보다는 망망대해 쪽이 낫다고 했을 겁니다(200p)

인간에게 붙잡힌 원숭이가 언어를 습득하고 인간 사회에 녹아들면서 느낀 점을 학술원에 보고하는 글이다. 두 가지의 비슷하면서도 대립되는 개념을 제시한다. 출구와 자유.

테두리 안에 갇힌 사람들을 자유를 갈망하고, 그 자유를 향한 출구를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출구는 쉬이 얻어지지 않는다. 급히 도망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찾기를 포기하고 침울한 눈길에 빠지면 우리는 그제서야 출구를 발견하게 된다. 일상속에 빈틈없이 치밀하게 숨겨져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찾은 위대한 출구룰 따라가면 사방을 향해 열려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침울해진다. 자신이 망망대해라는 또다른 테두리 안에 갖혀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철창에 갇혀있던 원숭이는 인간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인간의 행동을 따라한다. 인사하듯 악수를 하고, 인간들이 먹는 술을 따라 마시고. 인간들은 원숭이를 철창으로부터 풀어준다. 원숭이는 이렇게나 쉬이 철창이 열림에 허탈감을 느끼면서도, 얼른 출구를 지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펼쳐진 자유는 또 다른 테두리였다. 먹고 살기 위해 서커트 곡예단에 들어가야만 했고, 끝없이 반복되는 출구와 자유에 지쳐버린다.

<세이렌의 침묵>

세이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오디세우스는 귀를 밀랍으로 틀어막고 자신을 돛대에 단단히 묶게 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그 점을 생각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도 그는 한 줌의 밀랍과 한 다발 사슬을 완벽하게 믿고 자기가 찾은 작은 도구에 대한 순진한 기쁨에 차서 세이렌들을 마주 향해 나아갔다.

 

자기 힘으로 그녀들을 이겼다는 감정, 거기에 이어지는 만인을 감동시키는 자무심에는 이 지상의 그 무엇도 맞설 수 가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