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피리어드

블루 피리어드(야마구치 츠바사)

 

  본과 2학년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 끝자락 8월. 미뤄왔던 성적조회를 했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등급을 유지하지 못했고 오히려 등수가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성적이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나를 비참하게 한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성적이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우울했던 날들을 이겨내도록 도와준건 역시나 친구였다. 영준이가 지난 1학기 중반에 생일선물 겸 추천했던 만화가 하나 있다. ‘블루 피리어드’라는 입시미술 만화인데, 소년만화 감성이 잘 섞여 있어서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 캐릭터들의 개성도 다양했는데 스토리라인 역시 탄탄했다. 무엇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건 역경 속에 등장하는 명대사들이었다. 아직 연재중인 만화이긴 하지만 2학기, 더 나아가 의학공부에 있어서 힘을 많이 얻은 것 같다.

 

  지난 1학기엔 나답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학기 나는 최애과목이 있었다. 심지어 최애과목을 정하기 힘들정도로 모든 과목들에 매료되어 있었다. 수업을 듣는 순간이 너무 기뻤고, 내 질문을 해소하고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이 흥분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학기엔 달랐다. 최애과목이랄게 거의 없었고 울며 겨자먹기로 영상의학이라 답하고 말았다. 나는 잘난 놈이라는 착각과 과오에 빠져 족보를 너무 맹신하고 수업을 듣지 않았다. 김상현답게 수업을 즐기거나 질문에 흥분되어있지도 않았다. 지난날동안 나는 학문을 좇아 공부를 한 것이 아닌, 사람과 등수를 좇은 것이었다. 9권까지의 만화를 보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이 있다. 앞으로는 성적이 곤두박질 치더라도 김상현답게 살아가자. 내가 나답지않다면 나의 삶엔 더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등수에 대한 부담이 싹 가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귀엽기도 하다. 초조와 긴장으로 가득할뻔 했던 여름방학이 덕분에 안도와 여유로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