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8 <소설 프로젝트 5: 노랑>

2022.01.18. PM 1:28.

6시간이나 늦게 일어났다. 평소라면 부리나케 가게로 달려가도 모자랄 시각이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이불까지 개키고 있다. 오늘은 야간작업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커튼을 걷으니 해가 중천에 떠있다. 이런 기상이 얼마만일까. 잠이 덜 깬 채로 신발을 신으려는데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신발장 위에 놓인 에너지바 몇 개를 챙겨 버스에 올랐다.

가게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저만치에 풍채 좋은 사장님이 보인다. 터덜터덜 내리니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내 어깨를 두드려주신다.

"와줘서 고맙다! 역시 믿을 건 너뿐이야. 몇달 전에 민원 세 건 넣었던 손님 기억나지? "

"아, 기억하죠. 유치원생 아들 끼고 온 젊은 부부 말씀하시는 거 맞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부부였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남녀와 그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와 카운터를 올려다보던 노란 유치원복 차림의 남자아이. 환불되지 않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는데, 자신이 파워블로거라며 들은 체도 않고 사장 나오라고 소리치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사장님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답했다.

"어, 맞아. 그런데 얼마 전에 안타까운 일이 있었나 봐.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하네. 그래서 급하게 야간작업할 사람을 찾았던 거야. 앰플은 다른 가게에서 미리 만들어오신 것 같으니까 작업만 좀 부탁한다."

근무자들에게 그토록 급히 연락을 돌리셨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니. 일당 확실히 챙겨달라는 농담을 사장님께 던지고 가게로 들어섰다. 부부는 복도 끝 대기석에 앉아있었다. 목례를 건네고 카운터로 향했다. 노란 봉투를 집어들어 안을 확인했다. 다른 가게들을 전전했는지 의뢰서 곳곳이 헤져있다. 내용은 흠잡을 데 없이 깔끔했고 과기부 날인 역시 잘 찍혀있었다. 부부에게 돌아가 허리 숙여 눈높이를 맞췄다. 3일 정도 소요될 것이고 걱정하지 말라는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고맙다는 답례를 건넨 부부는 복잡한 가게를 익숙한 듯 빠져나갔다.

우리 가게는 향을 사고 판다. 지난 10년간 향수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일궈냈다. 기존에는 화학약품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향을 조합했지만, 이젠 순간 순간의 공기를 앰플에 담아 액체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우리 가게는 프리지아 향이나, 모기향 냄새를 담은 향수를 팔던 실용적인 가게로 시작했다. 안전의 욕구를 해소한 손님들은 보다 상위의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 했다. 새벽 공기 향, 지하 주차장 냄새, 오래된 책 향, 강아지 발 냄새. 특히 아기 살 냄새는 개발 초기부터 지금까지 매출 1위 자리를 놓지않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사장님은 새로운 향 시장 확장에 선구적으로 뛰어들었다. 대중적인 수요가 아닌 개개인의 고유한 향을 주문 제작하고자 했다. 매일같이 맡을 수 있을 텐데 무슨 수요가 있겠나 싶었지만 의외의 곳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세상 떠난 사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유족들은 상복을 아직 벗지도 않은채, 고인의 향이 아직 보관되어 있는지 줄기차게 찾아왔다. 일찍이 부모를 여읜 사장님은 가슴속의 무언가를 느꼈다며 당시의 번뇌를 영웅담같이 쏟아내곤 한다. 이후 보험 업계와 협업을 하면서 가족의 향을 미리 담는 사업을 펼쳤고, 지금에 와선 향 사업의 개척자라 불릴 만큼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부부를 돌려보내고 직원 탈의실로 향했다. 작업 가방을 꺼내어 노란 안전복을 챙겼다. 최근 화두에 오른 사업이 있다. 유족들을 등에 업고 과학기술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사업. 현재가 아닌 과거의 향을 담는 기술이다. 원하는 대상에 제사용 향을 흘려보내고 이를 특수제작 앰플에 담으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과기부 산하기관의 연구 결과, 자정, 그것도 단 한 명의 작업자 홀로 수행했을 때 수득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어둑한 밤 공동묘지에 혼자 걸어가 향을 피우는 기분은 말로 설명될 수 없다. 첫 작업 당시, 카운터업무 일당의 다섯 배를 불러도 근무자 단톡방엔 정적만 흘렀다. 나는 돈이 궁한 건 아니었지만 미루는 꼴을 못 보는 성격이었던지라 자원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가방에 담고 있는 노란 특수 앰플은 어느덧 다섯 번째가 되어있었다. 가게 탑차에 올라타 의뢰서에 적힌 주소를 찍었다. 이른 감이 있지만 휴게소에서 여유롭게 저녁을 먹고 싶었기에 미리 가게를 빠져나왔다.

현장에 도착하니 자정을 한 시간 남겨두고 있었다. 정문으로 향하니 좀 전에 통화했던 경비 아저씨가 나와 게이트를 열어주셨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진다. 게이트 옆에서 작업 가방을 내려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데 겨울바람이 매섭게 분다. 날을 잘 잡은 것 같다. 향 스며들기엔 딱 좋은 날씨다. 옷을 다 갈아입고 탑차의 화물칸에 들어갔다. 문을 닫고 제사용 향을 피워 나의 냄새를 지우는 과정이다. 연기가 자욱해질 때면 마치 불난 집에 갇혀있는 구조자가 된 기분이다. 타이머를 끄고 화물칸에서 나오니 경비아저씨가 침침한 눈으로 의뢰서를 훑고 계셨다. 늦은 밤까지 고생 많으시다는 인사를 건네고 공동묘지 안쪽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1구역 2행 8열. 한참을 헤맨 끝에 구역 가장 구석진 곳에 달했다. 잔디는 반쯤 죽어있고 잡초가 듬성듬성 자라 있다. 구역 경계부에 자리한 큰 고목 때문에 볕을 잘 밭지 못한 탓인 것 같다. 가방을 한쪽에 내려놓고 목례를 올림으로써 작업이 시작된다. 우선,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는 차원에서 비석을 찬찬히 닦는다. 2017년 생, 2021년 졸. 이제 막 말문이 트일 나이인데 일찍이 거두어간 하늘이 야속했다. 비석에 앉은 노란 달빛을 따라 고개를 드니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비석 위에 특수 앰플을 올려놓았다. 우리 가게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가게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가게에서도 클레임을 걸다가 거절당했던 부부가 우리 가게로 온건가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묘 뒤로 향했다. 잔디를 몇 번 뉘어 자리를 만들고 제사 향을 놓았다.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가 라이터를 꺼냈다. 향 세 개 중 하나를 켜고 나머지 둘을 켜려는데 이상하리만치 불이 켜지지 않는다. 틱. 틱. 가스는 많이 남아있는데 몇 번이고 흔들어도, 매서운 바람을 손으로 가려봐도 켜질 생각을 않는다. 손목의 시계를 보니 자정까지는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휴대폰을 꺼내 경비아저씨께 전화를 걸려는 데 뒤에서 나뭇가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숨이 턱 막혔다. 몸이 굳는다.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까 그 고목에서 난 소리 같았다. 나무 위를 향해 천천히 시선을 올리는 데 물장구치듯 흔들거리는 다리가 보인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웬 남자아이가 가지 위에 걸터앉아 내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고 싶었다. 소리를 지르기는커녕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아이는 말없이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순간 달빛에 비친 얼굴이 보였다. 지난번에 부부와 함께 왔던 그 아이였다.

"말 못 해?"

나는 억지스러운 웃음을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살려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불장난하러 왔지? 나 그 냄새 싫어. 발 냄새 같애. 머리가 찡하단 말이야. 이리 올라와. 여긴 좀 상쾌해"

가슴이 안정되려나 싶었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나무에서 뛰어내려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그리고는 내 뒤로 지나쳐 손가락을 비벼 향 불을 껐다.

"이제 좀 낫지?"

이대로 가다간 자정을 넘길 것 같았다. 실패할 각오를 하고 목숨만 건져가자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알아 나도. 엄마 아빠가 나 찾는다는 얘기? 알았으니까 좀만 있다가 피자. 5분만 쉬었다가."

아이와 묘 뒤에 나란히 앉았다. 이미 다른 가게에서 많이 왔다 갔나 보다. 부부가 가져온 앰플이 많이 닳아있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그렇다면 왜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의뢰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토록 아들을 그리워했나. 궁금함을 뒤로 한채 나를 이런 고통에 빠지게 한 그들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능숙하게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묘 위에 걸터앉아 무릎을 안은 채 발끝으로 잔디를 이리저리 찼다. 향이 피어오르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불안해?"

"아니. 기분 좋아. 엄마 아빠한테 뭔가를 해줄 수 있잖아. 나는 엄마 아빠를 사랑해"

향은 바람을 타고 아이를 관통해 앰플로 들어갔다. 아이는 처음 봤을 때보다 옅어져 있었다. 나는 굳은 다리를 몇 번 주무르고 일어섰다. 비석 위 앰플을 닫고 묘 뒤로 돌아가 향 불을 껐다. 짐들을 가방에 조심스레 넣고 지퍼를 닫았다. 떠나기 전에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이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였다. 뛰어내리다 생긴 상처인지 다리엔 곳곳에 노랗게 멍이 들어 있었다. 아이는 울음을 참는 듯 하늘을 향해 고개를 추켜올렸다. 묘 주변에 잡초를 뽑으며 말을 건넸다.

"갈게. 뭐 필요한 거 있니?"

한동안 말이 없던 아이는 무릎에 고개를 처박고 웅얼거리듯 말했다.

"또 와줘."

한번 채취된 향은 쉬이 복제가 가능하다. 즉, 향 채취가 잘못됐다는 클레임이 있지 않은 이상 다시 묘지를 방문할 일은 없다. 특히나 고인의 향은 다시 의뢰하려면 다른 가게에서 의뢰서를 새로 받아야 하기에, 내겐 오늘이 아이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른답게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대답 없이 묘지를 등지고 걸어 나왔다.

그다음 이틀은 거의 잠만 잤다. 야간작업을 포기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틀간의 휴식을 마치고 가게로 돌아오는데 아침부터 경찰차 한 대가 가게 앞에 주차되어있다. 가게 문을 여니 낯선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장님은 경찰 두 분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직 일당 입금 안된 것 같다고 말씀드리려던 찰나에, 나를 발견한 사장님은 달려와 손을 잡았다

"마침 잘 왔다. 별일은 아니고 경찰분들 묻는 거에 답 좀 해줘. 내가 말 안 해도 눈치껏 잘 알지? 나는 요트대회 인터뷰가 있어서. 미안하다."

경찰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간단한 소개를 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서에 가시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오늘까지 가게를 비우면 3일째 유급휴직이라 곤란했다. 사장님도 나가시고, 업무를 일임할 다른 근무자도 없었기에 가게를 비울 수는 없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직원실로 모셔 이야기를 이어갔다. 며칠 전 야간작업을 맡긴 부부에 대해 먼저 입을 떼셨다. 가히 충격적인 얘기가 돌아왔다. 아동학대 정황이 발견되어 현재 수사 중에 있다고 한다.

"... 그래서 수색을 하고 있는데 장롱에서 향수병이 대거 발견됐어. 온갖 향들을 다 샀더라고. 아까 사장님께 여쭤보니까 가격대가 엄청나. 형편도 여의치 않은데 그 많은 앰플들을 사서 어디에 쓰려나 찜찜하더라고. 앰플에 적힌 가게들을 다 찾아보고 있는데 가장 최근에 의뢰한 곳이 이 가게였어. 그런 사람들이 많아? 비싸디 비싼 앰플만 골라서 100개씩 사가는 사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전국의 가게를 순회하며 고인의 향을 애원했던 부부가 아동학대라니. 인기 많은 앰플들 수백 개보다도 중요한 그 향. 무슨 향일지 궁금했다. 경찰분들께 잠시 시간을 달라고 말한 뒤 앰플 보관실로 들어갔다. 완전수득까지 아직 하루 남았지만 스포이드로 한 방울 꺼내 증폭기에 넣었다.

과거의 향은 무수히 많은 과거들을 담는다. 대상과 앰플 주인이 함께 했던 온 순간들이 평균되어 담기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와 함께한 순간들이 어땠는지가 이 병에 담겨있는 것이다. 잠시 후 방 안에는 아이 살 냄새가 가득 퍼졌다. 그러나 기분좋은 향이 아니었다. 정제되지 않은 텁텁한 향. 장롱에 있다던 앰플들이 생각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쇠 냄새 같기도 하고 피비린내 같기도 한 냄새가 기분 나쁘게 코를 찔렀다. 이 향을 받아본 부부는 자신의 악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국의 가게를 돌며 다시 의뢰를 해온 것 일터. 마음을 다잡고 앰플 보관실 한켠의 노란색 정화 버튼을 눌렀다. 자신을 내어주던 아이가 내게 건넸던 말들이 생각났다. 앰플을 원 위치에 돌려두고 보관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