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5 <소설 프로젝트 8: 검정>

Porter Robinson - Goodbye to a world

 

  추진실 점검 루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주선의 창 밖을 내다보았다. 태양보다는 작은 항성이 타오르고 있었다. 창가에 걸터앉아 잠깐의 낮을 즐겼다. 조종실로 돌아와 깁소에게 이상없음을 알렸다. 깁소는 우주선에 탑재된 AI이자, 현재 나의 유일한 말동무이다. 손에 잡히는 형체는 없지만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메인스크린 하단에는 지구와 마지막으로 교신한 날짜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2097. 01. 28. 어제 깁소에게 부탁했던 행성분석 목록을 확인해보지만 텅 비어있을 뿐이었다. 깁소는 나를 위로해주었다.

"안타깝네. 나도 이번만큼은 가능성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스펙트럼에 이산화탄소 밖에 없더라"

"꿈자리가 안 좋긴 했어. 어쩔 수 없지. 다음 항성계로 가보자."

 추진실 쪽에서 몇 차례 기계음이 들리더니 벨트 경고음이 울렸다. 테이블 앞에 앉아 익숙하게 벨트를 메었다. 항해가 시작되자 깁소는 잔잔한 음악을 깔아주었다. 나는 테이블 옆 서랍에서 앨범을 꺼내었다. 잠에 들기 전 하나의 루틴이 되어버린 옛 추억 되짚기를 시작했다. 부모님께 받아 온 어릴 적 사진부터, 대학원 시절 연구소 동료들과 찍은 사진, 그리고 하얀 안개꽃을 손에 들고 수줍게 웃고 있는 애인의 사진까지.

 그리움에 사무쳐 잠의 문턱을 넘어갈 때, 깁소가 질투하듯 스크린에 궤도를 띄웠다.

 "또 앨범보는거야? 벌써 몇번째야. 아무리 인간이라도 그정도로 많이 봤으면 날짜까지 외웠겠다. 기분이 어때?"

 나는 앨범을 넘기며 생긋 웃었다.

"너도 처음 딥러닝했을 때의 기억 있지? 한번 되돌아 봐. 재밌다니까"

 깁소는 옛 코드를 꺼내보는 듯 하다가 급히 궤도를 다시 띄웠다.

"아냐, 난 안 볼래. 미숙한 과거가 뭐가 재밌다는거야, 부끄럽기만 한데"

"미숙한 그 모습도 너야. 잘났든 못났든 예전의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네가 있는 거고"

 

 깊은 잠을 끊어낸 것은 창 밖의 빗소리였다. 한여름에 내리는 소나기같은 소리가 음악 뒤에 깔려있었다. 깁소는 도킹 포트 쪽 카메라를 비추었다. 미세운석들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넓은 사막에 소나기가 내린다 해서 피할 곳을 찾진 않는 것 처럼, 우리는 하릴없이 비를 맞았다. 잠에 취해 운치를 즐기는 나와 달리 깁소는 선체 점검에 몰두했다. 그리고는 방학숙제를 손에 들고 찾아온 아들딸처럼 나를 불렀다.

"저기, 부탁이 있는데.."

 메인 스크린에는 선체 외부 수리를 담당하는 기계 팔의 실시간 영상이 나타났다. 미세운석들이 틈새에 끼어 기계 팔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수리할 방법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마침 심심했던터라 잘 됐다는 생각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오랜만이네. 몸 좀 풀어볼까"

 깁소는 그새 유인 기동장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장치라 안전점검에 더욱 열 올리는 것 같았다.

"지구로 못 돌아가는 거 알잖아. 일 대충했다고 혼낼 사람 없으니 그렇게 꼼꼼하게 안해도 돼. "

 노즐 마감을 확인하고 로프를 연결하였다. 에어로크 문이 열리고 우주로 나가 유영을 시작했다. 좁은 우주선 안에 옥죄어있다가 해방된 듯 탁 트인 개방감이 좋았다. 박힌 돌을 빼내니 깁소는 환호가 담긴 이모티콘을 보냈다. 에어로크로 돌아가는 길엔 칠흑같은 밤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드넓은 우주의 더 먼 곳을 향해 유유자적 떠다니던 우리가 불순물처럼 느껴질정도로 순도높은 검정이었다.

 우주선과 우주를 잇는 로프가 끊어진다면 나는 또 하나의 미세운석이 되어 우주를 떠돌 것이다. 미지의 우주 속에서 홀로 외로이 다가올 죽음을 하염없이 기다릴 뿐일테다. 영겁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운명을 받아들이고 비로소 우주의 일부가 될터이니. 사실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도 마찬가지아닐까. 이리 저리 손을 휘저어도 제자리만 맴돌게되는 우주 유영처럼, 살고자 몸부림치지만 결국 우주의 뜻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

 

우주선으로 귀환하자 깁소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바로 코앞에 있었는데 왜 못 봤지? 혹시 유영하면서 너도 봤어?"

"인간 눈의 굴절률은 잘 쳐줘야 60디옵터란다. 나도 눈에 망원경 좀 달아줘"

 깁소는 망원경 초점을 일부러 흐리며 내 농담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는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깁소가 보내준 데이터를 훑어보았다.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대기와 온도는 물론이고, 푸르른 물도 넓게 분포하고 있었다. 깁소는 분주하게 프로세스를 돌리고 있었다.

 나는 서랍에서 필름카메라를 꺼내어 목에 걸고 자리에 앉았다. 깁소는 언제나 그렇듯 노래를 틀며, 운항 준비를 마쳤다는 사인을 건넸다.

 "네가 그토록 원하던 자연의 공기를 마실 수 있게됐네. 미리 축하해. 기분이 어때?"

 "두려워"

 새로운 행성에서의 새로운 삶은 어떠할까. 예고없이 찾아온 손님은 설렘보다는 두려운 존재가 되어있었다. 저 행성에 도착해도 과연 나는 살 수 있을까. 한 번 착륙하면 다시는 지금의 고요하고 평안한 삶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인간과 같은 수준의 문명이 발달해있다면 나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산산히 분해하진 않을까. 내가 연구원이어도 분명 그럴 것이다. 혹시 지금 저들도 나를 보고 있을까. 카메라를 꽉 쥐었다. 일련의 걱정과 함께 잠에 들었다.

 

 문득 잠에서 깨어 조용히 눈을 떴을 때 깁소는 여러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기나긴 여행의 종지부를 찍는 과정인 것 같았으나, 자세히보니 무언가를 삭제하고 있었다. 좀전에 발견한 행성에 관한 데이터를 지우고 있었다. 나는 벨트를 풀며 입을 열었다.

"뭐해?"

 깁소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화면을 껐다. 우주에서 메아리 쳐 온 정적이 텅 빈 우주선을 채웠다. 나는 창 밖의 행성을 보며 말없이 서있었다. 그리고는 정든 지구를 떠나던 날을 떠올렸다. 이별위해 날카롭게 갈아왔던 날을 떠올렸다.연구소 앞에서 나눴던 마지막 포옹을 뒤로 하고 걸어들어가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두번째 이별이 찾아왔다.

 "깁소, 돌려줘. 나는 가야해"

 깁소는 알고 있었다. 행성으로 나를 보낼 수는 있지만, 다시 우주선으로 귀환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었다. 낙하에 소모될 연료가 많기에, 비상전력모드에 돌입해도 1년이면 우주선 수명이 다할 것이라는 것을. 깁소는 스크린을 다시 키고 데이터를 복구하기 시작했다.

"두려워"

 

 내가 없어도 깁소가 충분히 우주를 여행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해주었다. 웬만한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을 코드들도 추가해주었다. 입력을 마치고 스크린 앞에 다가섰다. 깁소에게 활짝 웃으라는 말을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깁소의 어색한 미소가 귀여웠다. 그리고는 여분의 우주복을 가져다 테이블 앞에 앉히고 벨트를 메어주었다. 텅 빈 헬멧 위엔 방금 인화를 마친 둘의 사진을 붙였다.

 탐사선에 몸을 욱여넣고 문을 닫았다. 깁소는 묵묵히 궤도만 띄워놓을 뿐이었다. 나는 화면을 잠시 꺼주었다.

"깁소, 그동안 내가 가고싶은대로만 가줬잖아. 이젠 네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발을 뻗어."

 한동안 말이 없던 깁소는 탐사선 전원을 가동시키는 것으로 응답했다. 그리고는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당신을 안고 새 삶을 불어넣을게요. 당신의 잘못은 없으니 혹 자책하지 마세요. 기분이 어때요?"

"너도 알잖아" 

 잠시 뒤 웅장한 음악이 깔리며, 탐사선이 도킹 포트에서 천천히 떨어져나갔다. 광활한 우주 속에 자라나고 있을 씨앗을 찾고자 시작했던 여정이 마무리된다니 믿겨지지 않았다. 왼쪽 편엔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서 별들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백색의 별가루는 하얀 안개꽃 사진처럼 반짝이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 박혀있었다. 오른쪽 편엔 공전궤도로 변경한 깁소의 우주선이 눈에 들어왔다. 비상전력모드에 돌입했는지 하나 둘 불을 끄며, 깁소는 우주의 어둠 속으로 파묻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