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2 <암순응>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눕는다. 전등을 끄고 눈을 감으면 여러 잡념이 번뜩인다. 여유롭게 시간을 흘려보내던 옛시절부터, 개차반같은 상사의 폭언, 앞으로 먹고살길에 대한 고민까지.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다시 떠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펼쳐있다. 그 끝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어두움. 이 순간만큼은 우주 못지않은 칠흑을 마주할 수 있다. 가끔 잠에 들지 못하는 밤엔 어둠 속에 숨은 공포를 느끼곤 한다. 저기 옷장속에 숨어있는 무언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진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이불로 몸을 감싸고 눈을 질끈 감는다. 

  과연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내가 상상하는 커다란 지옥마귀는 작은 옷장 속에 웅크려있을 깜냥이 없다. 여차저차 몸을 구겨넣었다 쳐도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울까. 두려움의 대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직접 맞서야만 한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두 눈을 다시 떴다. 눈을 뜨고있는 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캄캄하다. 유일하게 믿을만한 것은 눈을 뜨고 있다는 나 자신의 믿음 하나뿐이다.

  초점없이 눈만 뜨고 있다보니 차츰 세상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옆에 누워있던 고양이를 흔들어 깨웠다. 고양이 눈은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난다고 하질 않던가. 하지만 폭력적인 어둠 앞에서는 누구나 공평하게 장님이었다. 그래도 나와 함께 저 옷장 속 괴물을 물리치러 가지 않을래. 내 부탁을 들은둥 마는둥 고양이는 이불 속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한올지다고 믿었던 우리 사이가 이렇게 얄팍했나.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시각을 포기하고 벽을 더듬거리며 촉각에 의지해본다. 옷장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었다. 나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닌 이 세상 속에서 가장 빠른 존재일 것이다. 그런 생각도 잠시, 발에 무언가 채이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무시한 줄로만 알았던 고양이가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을 숙여 고양이를 들어 안아주었다. 내가 속단했던 고양이의 눈 속엔 달빛을 머금은 윤슬이 서늘하게 내려 있었다. 달빛은 방안 어디에나 가득했다. 개켜놓은 이불 위에도, 더듬거렸던 벽에도, 걸어온 길에도,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고양이의 얼굴에도 빛이 가득했다.

 옷장 속에도 이 빛을 넣어주고 싶었다. 문을 열었다. 내 두려움의 대상은 옷장 속의 공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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